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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새벽의 저주 - 생존 스크랩
2017.07.17 0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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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중간에 떠오른 개념은 이 조합이 말이 돼? 실화야?

영화 <황당한 새벽의 저주>가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지는 몰랐다. 그저 영화프로에서 봤을 때 좀비 영화인데 재미있고 코믹할 것 같은 화면에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좀비 영화 중 코믹으로 한 영화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있다면 이 영화가 최초가 아닐까 한다. 좀비 영화가 분명히 호로 영화물에  속하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공포가 크게 생기진 않았다. 액션에 좀 가깝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영화는 시작하고 20분 정도 상영 시간동안 좀비와는 아무런 연관 없는 내용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숀(사이먼 페그)의 하루와 그의 연인인 리즈(케이트 애쉬필드)의 다소 삐걱대는 로맨스. 함께  살고 있는 친구 중 짐처럼 집에서 기거하며 큰 보탬이 되지 않는 에드(닉 프로스트)가 다소 코믹영화처럼 보여줬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무엇인가 변화가 있다는 걸 TV 뉴스로 조금씩 알려주며 언제 좀비가 본격적으로 나오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다.

여타의 좀비 영화에서 평소에 느릿느릿 걷던 좀비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상당히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데 반해 이 영화는 거의 시종일관 느릿하다. 게다가 좀비들이 딱히 능력치도 없다. 워낙 한꺼번에 대상을 몰려가서 공격하니 규모로 압도되어 결국에는 물린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좀비영화지만 사랑과 우정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영웅이 나오지 않지만 영웅이 되는 과정을 분명히 그리고 있지만 코믹하다.

특히 숀이 일어나서 늘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조금의 의심이나 주변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똑같은 상황이고 행동이지만 주변이 전부 좀비로 뒤덮혀있는데도 이를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원래 그렇게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행동 할 때는 별 의식없이 생활한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주 작은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보여준다고 할까.

이 영화인 <황당한 새벽의 저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생각도 영화를 보며 떠올렸다. 좀비 영화에서 대부분 큰 피해를 인간들이 입는다. 생각해보니 이는 도시의 저주가 아닐까. 도시에 집단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벌어지는 형벌이다. 대도시일수록 좀비를 피할 수가 없다. 누군가 물리면 이를 피하긴 힘들다. 어디를 가나 인간이 곳곳에서 진을 치고 있다. 중심지를 벗어난 거주지라고 해도 이 점은 변함없이 동일하다.

이렇게 큰 피해를 입는 좀비의 공격을 만약에 시골에 살았다면 오히려 안전했을 것이다. 실제로 좀비 영화들을 보면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고 한다. 오히려 허허벌판같은 곳이 가장 피하기 좋은 곳이다. 좀비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도 있고 좀비는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에서 머무는 특성이 있다. 사람없는 곳에는 좀비도 없다. 이러니 시골에서 몇 가구 안 사는 곳에는 좀비가 출몰하지도 않을테니 물리지도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있을 듯하다.

영화는 좀비를 피해 움직이는 데 어느 누구도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다들 찌질하고 힘없고 그다지 머리 쓸 지도 모른다. 게다가 심각하고 좀비를 피해야 할 순간에도 별 생각없이 평소처럼 행동해서 화를 더 키우기도 한다. 이런 모습에서 오히려 사회 부적응자가 좀비에 걸리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있다보면 오히려 살아 남을 가능성이 좀 더 클테니 말이다.

영화가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그 점이 재미있었다. 좀비는 인간이 아니지만 분명히 살아있고 지치지 않는다. 죽지 않으니 말이다. 이를 활용해서 단순 노동에 투입한다. 그것도 지치지 않으니 잘만 활용하면 훌륭하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 흔히 우리가 좀비처럼 행동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데 그에 대한 증거처럼 보였다. 웃겼지만 생각하면 결코 웃기 넘길 수 없는 장면이라고 할까. 영화는 생각만큼 코믹하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봤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숀이 배트를 드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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