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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이 우리를 버려도 포기할 수 없어요 스크랩
2017.07.17 11: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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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우리를 버려도 포기할 수 없어요

 

 

 

위대한 작품 뒤에는 위험한 사랑이 있다. 천재적인 예술가, 철학자, 시인들과 그들의 뮤즈. 그들의 사랑이 불멸의 작품으로 남겨지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 마지막 편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러브스토리다.

 

 

이건 영원한 사랑이야

 

 

 

(오노 요코와 존 레논)

 

 

20세기 최고의 팝 가수로서 젊은이들의 우상이던 존 레논과 떠오르는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가 처음 만난 것은 1966년 영국 런던의 인디카 갤러리에서였다. 런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거점이었던 그곳에서 오노 요코가 작품전을 열고 있었다. 전시장의 여러 작품들 중에 존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못을 박기 위한 페인팅>이었다. 존은 초면인 오노 요코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다 못을 박아도 될까요?”

“5실링을 내면 그림에 못을 박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존은 웃으면서 오노의 위트에 위트로 답했다.

그럼, 내가 5실링을 주었다고 상상하고 상상 속에서 못을 박으면 되겠군요.”

 

이것은 어쩌면 오노 요코가 회상한 것처럼 요란하게 충돌한 첫 만남이었으며, 존 레논이 회상한 것처럼 그때가 진짜 만난 때였고 그 뒤로 역사가 이뤄졌다.” 이후 둘은 그 어디서든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예술에 대해 교감했다.

 

 

(존 레논의 첫 번째 부인 신시와와 존 레논)

 

 

그런데 존 레논에게는 정식 데뷔 전인 무명 시절에 결혼한 아내 신시아와 어린 아들 줄리안이 있었다. 그들은 결혼할 때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는데 그 후에도 비틀즈가 내놓은 음반마다 빅히트를 치면서 더욱 바빠져 충실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노 요코를 만난 것이다. 존보다 7살 연상인 서른셋의 오노 요코에게도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동료 예술가인 앤서니 콕스와 재혼하여 낳은 딸 교코가 있었다.

 

존과 오노의 사랑은 세간의 축복을 받기는 힘든 모양새다. 더구나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존 레논이었기에 그 사랑만큼 오노 요코에게 쏟아진 비난은 거셌다. 그녀는 비틀즈의 존 레논을 훔쳐 간 마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주변의 반응이나 현실적인 조건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1968년 존 레논은 10만 파운드의 위자료와 아들 줄리안을 위한 양육비 책임을 조건으로 신시아와 이혼했다. 오노 역시 1969년 앤서니 콕스와 정식 이혼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존 레논이 속해 있던 팝 그룹 비틀즈)

 

 

존과 오노라는 두 소울 메이트의 결합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야 했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존은 1969년에 발표한 곡 <Don't Let Me Down>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난생 처음 사랑에 빠졌어.

이 마음이 오래갈 것이라는 걸 넌 모를 거야.

이건 영원한 사랑이야. 과거 시제가 없는 사랑이지.

 

두 사람은 19693월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합은 단순히 남과 여의 결합이 아니라 두 예술혼의 결합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1969년 결혼식을 올린 후부터 두 사람은 전위적인 파격 행보를 보였다. 존 레논은 비틀즈의 가수 존 레논이 아닌 반전 평화운동가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고, 삐걱거리던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비틀즈 해체 수순을 밟았다. 존과 오노가 결혼한 지 1년 후인 1970년 비틀즈는 해체한다. 그러자 오노 요코는 비틀즈를 해체시킨 주범으로 몰리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다시금 비난을 받았다.

 

 

(반전 평화 운동을 하고 있는 오코 요노와 존 레논)

 

 

비틀즈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존은 반전 평화운동을 벌이면서 동시에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오노는 팝 가수에 머물러 있던 그의 사상과 세계를 넓혀주었다. 둘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하게 반전 평화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적 실천가로서 활동했다. 존 레논이 발표하는 음악도 이전의 것들과는 달랐다. 특히 그가 미국에서 발표한 이매진(Imagine)’은 커다란 방향을 일으키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매진은 존 레논의 사상은 물론 오노 요코와 합일된 사랑의 결정체와 같은 곡이었다.

 

1980128, 존 레논이 마흔이 된 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늦은 밤 뉴욕의 아파트로 귀가하고 있는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존의 팬이라며 사인을 받아 갔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남자였다. 곧이어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그 네 발의 총격이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뮤지션 존 레논을 쓰러뜨렸다. 연인이 쓰러지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오노 요코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세상은 또다시 그녀를 존 레논을 죽인 마녀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녀는 존이 없는 낯선 세상에서 계속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다.

 

 

(아들 션과 함께 있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서로 상상하는 세계를 나누면서 음악의 깊이를 더해갔다. 세상의 비난을 끊임없이 받았지만, 평화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곡을 만들고 또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존 레논이 말한 것처럼 예술적 온도가 맞는두 영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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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캔들 <박은몽> 저

책이있는풍경, 2017년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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